미완의 꽃피움

10 April - 31 July 2025
Overview
K&L 뮤지엄은 오는 4월 10일부터 7월 31일 까지 독일 베를린의 현대미술가 앤-크리스틴 함(Ann-Kristin Hamm)의 개인전 <The Unfinished Bloom, 미완의 꽃피움>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근현대 미술의 중요한 흐름인 신표현주의 (Neo-Expressionism)의 흐름에서 발전한 독일 추상미술의 계보를 잇는 함의 작품세계를 국내에 최초로 소개하는 자리다. 함의 회화는 전형적인 구성을 해체하고 추상과 다양한 이미지를 재구성함으로써 즉흥성과 혼합성을 강조하는 실험적인 접근을 보여준다. 
 
회화에서 표현주의는 1905년 독일 드레스덴에서 결성된 Die Brücke 그룹을 통해 시작되었다. 이들은 현실을 그대로 재현하기보다 내면의 감정을 강렬하게 표현하는 데 집중했으며, 이를 위해 왜곡된 형태와 풍부한 색채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19세기 말 과 20세기 초에 걸친 기술의 발전과 산업화, 그리고 두 차례의 세계대전은 인간 내면의 불안과 두려움을 더욱 증폭시켰고, 이러한 감정들은 예술을 통해 분출되고 해소되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표현주의의 감정적 표현과 추상적 요소는 추상회화의 발전을 촉진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특히 독일에서는 추상미술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여러 거장들이 대거 등장했으며, 이 굵직한 흐름은동시대 미술까지 힘차게 흘러오고 있다. 바실리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는 색채와 형태의 순수한 아름다움을 탐구하였고, 상징적이고 감성적인 색채로 자연과 인간의 순수성을 탐구한 프란츠 마르크(Franz Marc), 구상과 추상, 사진과 회화를 넘나들며 독자적인 스타일을 구축한 게하르트 리히터(Gerhard Richter)와 회화라는 매체 자체에 의문을 제기하는 알베르트 올렌(Albert Oehlen)까지 수많은 추상미술 거장들이 배출되었다. 
 
이처럼 다양한 형태와 스타일로 발전하며 현대미술의 중요한 흐름으로 자리잡은 표현주의와 추상미술의 단단한 뿌리를 간직한 독일에서 유구한 행보를 이어오고 있는 앤-크리스틴 함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독일 추상미술의 거장, 알베르트 올렌(Albert Oehlen)과 디터 크리히(Dieter Krieg)에게 사사받고 쿤스트아카데미 뒤셀도르프(Kunstakademie Düsseldorf)를 졸업하였다. 현재는 동대학에서 후학을 양성하는 동시에 자신의 예술적 탐구를 지속적으로 확장해 나가며 독창적인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앤-크리스틴 함은 ‘그리기의 행위’ 자체를 강조하며, 삶 속에서 발견하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각적 반응과 직관을 회화 속에 녹여낸다. 그녀의 작업은 유동적으로 변화하는 자아와 감정의 흐름을 좇으며, 이 과정에서 시작과 끝이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 창조적 충돌과 감각적 반응의 산물이 캔버스 위에 남는다. 특히 대형 회화를 주로 다루는 작가는 캔버스라는 텅 빈 공간이 주는 저항감과 압도되는 느낌을 시작점으로 삼고 그녀를 둘러싼 온도, 직감, 갈망과 같은 무형의 감각에 집중하며 캔버스 위에서 끊임없이 탐색한다. 이 과정에서 함은 바라봄과 반응의 행위를 반복하는데, 그림의 일부를 과감히 버리고, 다시 정리하는 등 끊임없이 균형을 맞추며 어느 순간 스스로 어디에 있는지 조차 알 수 없는 깊은 몰입 상태에 빠져든다. 
 
텅 빈 화면속으로 가느다란 선이 날아 들어가고, 미묘한 색조와 겹겹이 쌓여가는 물성의 층이 피어 오르는 그녀의 회화는 마치 작은 씨앗에서 시작한 꽃의 만개 과정을 보는 듯 하다. 질서도, 실체도 없는 추상이지만 애매하게 문질러진 표면과 작고 거친 붓질이 서로 대조를 이루고, 공간 속에서 앞뒤로 뛰어다니는 듯한 생동감을 자아낸다. 끊임없는 본능적 행위와 반응의 낯선 논리 속에서 기인한 형태와 색채의 번식은 구술과 문자 언어로는 설명하기 힘든 시각언어만의 영역이다. 고정된 해석보다는, 감각적인 접근의 공감을 요한다.
 
마치 꽃이 피는 것에 생명의 근원과 종결을 말로 설명할 수 없듯이, 앤-크리스틴 함의 작품은 그 자체로 창조적인 변화를 거쳐 유기적으로 존재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림 속에서 삶을 바라보고 느낄 수 있다. 캔버스 위에서 스스로 피어나는 함의 작품은 새로이 꿈틀거리는 봄, 그 역동적인 변화의 과정을 통해 관객들에게도 공명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