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samtkunstwerk: 총체예술: 헤르만 니치 개인전

5 September - 30 December 2023
Overview
모든 것은 우리의 행위라는 현실 속에서 함께 어우러진다. 시는 회화가 되고, 회화는 시가 되며, 음악은 행위가 되고, 액션 페인팅은 연극이 되고, 비공식적 연극은 처음으로 시각적 이벤트가 된다.
K&L미술관은 9월5일부터 12월 30일까지 개관전으로 오스트리아의 전위 예술가 헤르만 니치(Hermann Nitsch, 1938-2022)의 개인전 <Gesamtkunstwerk: 총체예술>을 선보인다. 헤르만 니치는 1960년대 초 예술의 개념 자체를 새롭게 확장한 빈 행동주의(VienneseActionism)를 이끈 오스트리아의 대표 현대 예술가이다. 회화, 드로잉, 판화뿐 아니라 퍼포먼스, 작곡, 무대 디자인에 걸친 넓은 스펙트럼의 작업으로 종합예술의 실현을 꿈꿔온 니치는 오감을 자극하는 과감한 행위예술과 그 행위(Aktionen)의 궤적을 담은 액션 페인팅(Gestural abstract painting)으로 잘 알려져 있다. 니치는 근 60여 년 간 복합적 장르와 매체를 통해 인간의 실존, 신체와 물성, 욕망의 구조와 억압 등에 관한 심오한 주제를 아우르는 실험을 지속해 왔다.

이번 개관전에서는 광범위한 니치의 전 작업 중에서 특히 유의미한 대형 회화 연작 <Bayreuth>을 펼쳐 보인다. <Bayreuth>연작은 작가가 2021년 독일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서 독일의 작곡가이자 음악 비평가 리하르트 바그너(Wilhelm Richard Wagner)의 오페라 ‘발퀴레(Walküre)’의 예술감독으로 초청되어 퍼포먼스를 통해 탄생시킨 대형 회화 작업이다. 본 전시에서는 이 연작을 중심으로 니치 작업의 총체성, 혁신, 확장성과 같은 주요 개념과 바그너가 추구했던 ‘총체예술(Gesamtkunstwerk)’의 접점들을 섬세하게 짚어보고자 한다. 니치는 바그너의 ‘총체예술이론’으로 깊은 영감을 얻어 음악, 연극, 시, 문학 등 다양한 분야의 예술을 종합한 총체예술 작업들에 매진해 왔다. 바그너 탄생 210주년 기념의 기획 의도 또한 담은 이번 전시에서는 2021년 당시 공연 영상 상영 및 회화 원작들을 집중 조명할 예정이다. 이번 전시를 통해 바그너의 독특한 음악 세계를 접목하여 자신만의 예술적 가치를 구현한 장대한(cosmic) 니치의 작품 세계를 만나볼 수 있다.

니치는 초기작에서 주로 언어를 매개로 연극이나 퍼포먼스를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다. 그는 셰익스피어, 파우스트, 클라이스트, 바그너 등 극작가나 작곡가의 극(劇)과 정신을 담아낸 행위예술을 참여자(배우)의 언어(대사)를 사용해 인간의 삶을 심리학적이고 존재론적으로 제시했다. 그러나 그는 1950년대에 이르러 깊고 미묘한 인간의 감정을 언어화하는 것에 한계를 인식했고, 제의적 행위예술과 연극을 통해 새로운 예술 영역을 확장하였다. 종교의식의 구조를 차용한 파격적 행위예술과 연극으로써 니치는 억압된 감정 분출과 카타르시스에 대한 새로운 예술의 가능성을 확장하였다. 니치의 행위예술은 이성과 합리에 맞물린 시각 중심주의에서 벗어나 촉각, 미각, 후각 등을 모두 활용한 감각의 장이라고 할 수 있다. 작가는 이성의 산물인 언어로는 도달할 수 없는 관객의 감각에 집중적인 반응을 일으키기 위해 우유, 식초, 와인, 동물의 피나 시체와 같이 유기적이고 오감을 자극하는 재료들을 도구나 설치물로 사용했다. 단선적 시각과 원근법적 중심을 강조하던 전통적 회화, 예술의 방법론을 해체하고 전복한 전위예술가 니치는 현실 속에서 삶과 융합하고 실존에 대한 감각을 일깨우는 작업들을 추구했다. 작가의 ‘행위(Aktionen)’는 삶의 깊이를 통찰하는 황홀하고 감각적인 원초적 경험으로서 그의 “총체 예술극은 인간이 느낄 수 있는 모든 감각, 오감을 살아나게 하는 것이다”

작가의 핵심적 예술관을 보여주는 작업으로 1960년대의 <망아적이고 신비스러운 종교의식 (The Orgies Mysterious Theatre, 이하 O.M.Theatre)>가 있다. 니치는 피가 튀는 장면, 괴성, 잔혹한 행위들 속 동물의 살점, 피, 내장이 뒤섞인 물감을 과감하게 뿌리고 칠하는 행위와 액션 페인팅을 선보였다. 당시 전례 없는 충격을 준 니치의 퍼포먼스는 부르주아적 계급사회와 권력구조에 저항하고 해체하려 한 사회적 메세지를 강하게 담고 있으며, 동시에 억압된 욕망과 충동을 해소하고 두 번의 세계대전 이후 예술개념을 다시 구축하고자 한 적극적 움직임을 담고 있기에, 미술사적으로도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언어에서 괴성과 비명으로, 음악이 소음으로, 회화는 무질서하게 흘러내리는 물감으로 확장된 파격적 형식의 행위예술은 우연적이고 극단적이며 원시적인 행위와 같이 순수하고 원초적인 재료를 바탕으로 관람객에게 충격을 주었다. <O.M.Theatre>에서는  오이디푸스, 토템신앙, 그리스도 등 종교와 신화가 다뤄지며 인간의 본질, 생명, 죽음, 부활을 주요 주제로 한다. 니치의 ‘행위’는 우리가 외면해 온 혐오스럽고 잔혹한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동물적 욕망과 수치심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경험을 제공하였다. 관객과 퍼포머의 구분이 없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형식의 퍼포먼스는 궁극적으로 중심과 주변, 상하, 미와 추, 허와 실 등의 단단한 이분법적 구조의 견고함에 의문을 던지는 것이며, 이러한 개념의 해체와 확장에 관한 화두는 동시대에서도 유의미한 맥락에 있다.

수십 년간 생명과 죽음, 불, 사랑, 육체, 피 등을 상징하는 붉은색과 검정색을 주로 사용해오던 니치는 1990년대에 들어 노란색, 보라색, 파란색, 녹색, 흰색 등 색의 사용 범위를 넓히기 시작한다. 후기작업에서 보여지는 밝고 강렬한 색상들은 빛을 상징하며 니치의 작업에서 빛은 주로 부활(resurrection)과 관련된 주제를 내포한다. 죽음과 피를 상징하는 색에서 점차 빛을 표현하는 색이 주를 이루기 시작하면서 니치의 예술은 부활과 생명의 개념에 보다 초점을 두는 양상을 보인다. 2021년 작가가 바그너의 발퀴레 공연에서 퍼포먼스를 통해 창작한 자유로운 액션 페인팅 또한 강렬하고 밝은 색상으로 구성 되어있다. 니치는 발퀴레의 삼막에 맞춰 세 개의 액션 페인팅 <Bayreuth> 연작을 선보이는데, 이때 작가는 각 악극의 내용에 따라 전혀 다른 색을 사용하였는데, 단순한 음악적 감상을 넘어 1,000리터가 넘는 물감을 사용하면서 물감을 흩뿌리는 다양한 액션으로도 오페라의 내용을 해석한다.

니치는 바그너의 총체예술에 내포한 상상력, 종교적 신비함과 심오함의 가치를 언급한 바 있다. “바그너의 아름답고, 감각적이며, 경쾌한 음악은 언제나 큰 영감이 된다. 예술은 이미 그 자체로 종교이며, 그 자체로 총체예술 이어야 한다. 바그너는 총체예술의 창시자이며 그로 인하여 총체예술 작품이 비로소 빛을 보기 시작했다.” 니치에게 바그너의 총체예술은 단순히 여러 예술 장르를 접목한 종합 예술을 의미하는 것만은 아니다. 니치가 바그너의 총체예술 작품에서 주목한 것은 형이상학적이며 초월적 대상인 신을 향한 경외심과 깊고 풍부한 상상의 원천인 신화적 요소들이다. 바그너는 신화적 요소들을 자신만의 음악적 소양으로 접목하고 변형하여 자신만의 사상과 철학을 구축하였다. 신과 인간, 초자연에 대한 웅장하고 깊이 있는 실존에 대한 고찰은 바그너와 니치가 공유하는 지점이라고 볼 수 있다. 니치의 예술은 단순히 종교를 선교하는 것이 아니며 신의 존재를 인식하여 인간 존재에 대해 근원적으로 질문하는 축제이자 의식이다. 바그너의 강렬하고 심오한 오페라 공연과 어우러진 참여자들은 본능에 의해 과감히 물감을 흩뿌리고 캔버스를 밟아 액션 페인팅을 완성해 나간다. 헤르만 니치의 행위예술은 바그너가 남긴 음악성과의 관계 속에서 새로운 형태의 총체 예술 작품으로 재탄생한다.

<Gesamtkunstwerk :총체예술>에서는 발퀴레 연작(Bayreuth) 8점과 당시 무대의 벽면에 함께 완성된 대형 설치회화, 작가가 2022년 생을 마감하기 직전까지 그려낸 드로잉 작품 20점, 그리고 그의 전반적인 예술관 확립에 있어 중추적 역할을 한 판화 20점 등 다양한 작가의 예술세계를 담은 작품들을 선보일 예정이다.

헤르만 니치는 글, 그림, 무대 연출, 그리고 작곡 등을 통해 그의 총체예술의 근간이 되는 아이디어들을 끊임없이 제시해 왔다. 그는 무대와 관객석 사이의 구분을 없애 참석자가 오감을 체험할 수 있는 참여형 예술을 시도하였으며 인간의 존재, 즉흥성, 강렬함, 카타르시스를 담아낸 주제들로 20세기 극장의 개념을 뒤흔들었다. 니치는 끝없는 고통, 시련, 잔혹한 순간들을 마주하는 삶의 본질적 의미와 이를 극복하는 인간의 초월성, 생명력, 부활과 소생 의지 속에 내재된 아름다움과 열정을 예술로 적나라하게 표현한다. 니치의 총체예술이 꽃피워 낸 강렬한 혼이 담긴 결과물들을 이번 전시를 통해 관람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K&L미술관은 이번 개관전을 통해 포스트모더니즘의 거대한 변화의 시작점에서 새로운 예술 개념을 구축한 헤르만 니치의 실험과 도전 정신, 바그너의 총체예술의 혁신성을 진지한 시각으로 비추어 보고자 한다. 이를 통해 K&L미술관의 향후 방향성을 심도 있게 가늠해 보고 동시대 예술의 역동적인 변화와 그 흐름을 주도하는 문화의 장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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